단상, 수필 Essay

겨울이면 생각나는 두사람

kenny Yang 2009. 3. 4. 14:47

겨울이면 생각나는 두사람 

 

 



넓은 나라 , 눈 많이 내리는 캐나다에 살면서 겨울이 되면 특별히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다.

몇년전 겨울 미국 오레건 주에서 가족과 함께 방문지에서 돌아오다 운전중 폭설로 갇혀 좁고 험한 길에서 조난당한 재미동포“제임스 김”과 필자가 체육관에서 만나던 중국계 캐내디언“씨푸”씨이다.

당시 다행히 제임스 김의 가족은 구조됐지만 이 삼십대의 팔팔했던 젊은 인재는 차가운 동사체로 구조대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인 이민 가정의 2세로서 모범적으로 성장하여 그 나이에 벌써 유명한 오디오 전문 웹 싸이트의 수석 편집장 이었다니… 그 재능도 아깝다.

지독한 눈과 한파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주머니에 고이 써서 남긴 가족들의 구조를 요청하는 메모로서 끝까지 가족사랑을 실천했던 그는 이시대 우리들에게 진정한 가장으로서 본을 보여 주었다.

그 좁은 1차선 산길은 동절기엔 위험해서 지역 정부의 담당부서에서 11월 1일부터 출입구를 자물쇠로 폐쇄 시켜 두었는데 누군가 그 자물쇠를 부수고 열어 놓은채 방치해 두었었다고 한다.

그대로 잠겨 있었더라면 외지인이고 가족을 동반한 제임스 김이 다른 안전한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참으로 한 유능한 인재의 생과사 갈림길이 그만 장난질 돌팔매에 애꿎은 선량한 개구리 맞아 죽은 경우인듯 싶어 어이가 없다.

 

 



필자가 몇년간 겨울에 운동하던 토론토 북쪽에 있는 배드민턴전용클럽에“씨~푸~”라고 불리는 66세의 왕 고참선수가 있었다.

이 분은 거의 하루 건너 저녁마다 나와서 운동하는데 모든 클럽회원 들이 씨~푸~ 라고 불렀다. 아 물론 본명은 따로 있지만.., 미스터 팬○ ○ 이라던가...

중국어로 씨푸란 Master, 즉 우리말로 사부라는 뜻이다.

이분이 50년 넘게 운동을 해왔고 클럽에서 가장 연장자이며 실제로 실력도 20대 A조 친구들과 같이 게임해도 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전 홍콩 국가대표로 70년대에는 세계대회에 출전했었다고 한다.

우리 한국 선수들 이름과 근황을 줄줄이 꿰고 있고 특히 김동문선수를 특별히 좋아 했었다.

씨푸 씨는 클럽내에서 A조나 C조를 가리지 않고 아는 멤버나 초면에도 누구에게나 코멘트 하기를 즐겨 했다.

중국계친구들에게는 중국어로 캐내디언들에게는 영어로...

주로 기술적인 내용이지만 자기가 클럽내에서 최고라며 은연중 실력을 자랑스럽게 얘기 하기도 하고 묻지 않은 자기의 비법(?)을 알려 주는 과도한 친절을 매일 베풀고 있어 첨엔 넘 친절한 분이구나 이렇게만 생각했다.

우리같은 C조야 노련한 민턴 선배인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새롭게 여기고 그의 비판을 감수하고 들어 주곤 하는데 일부 자존심 강한 몇몇 A조나 젊은 학생 선수들은 반복되는 그의 비판섞인 코멘트에 반발하고 심지어는 클럽을 떠나는 회원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고 나서는 씨푸씨도 후엔 말을 좀 아끼는듯 보였지만...

필자도 초보자가 클럽에 오면, 특히 같이 파트너로 복식게임 해야 할 경우 게임 흐름상, 또 로테이션에 서로에게 익숙치 않아 안전문제로 게임중 피치 못하게 말을 할 경우가 있지만, 상대방 입장을 고려해서 더욱 신중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하였다. 그러나 막상 실제 게임에 몰두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승부욕이 앞서 파트너에게 이렇게 했으면, 저렇게 했으면...

그러나 반대로 파트너에게서 내가 게임 중에 듣는 얘기는 파트너가 나보다 실력이 월등한 경우라도 순간적으로는 기분이 좋을리 없다.

물론 나중에 되새겨 보면 배울점도 많지만... 내 입에 쓴게 약이 된다고 자위하며 더욱 실력 연마에 마음을 다잡아 보는쪽으로 전환해서 마음을 다스리니 한결 나아졌지만.

그러나... 자기만을 위하여 잠깐 괜찮겠지? 하고 폐쇄된 도로의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그대로 방치해버린 한사람의 단순한 잘못된 행동 하나가 아까운 젊은 인재 제임스 김을 사망케하였고 ...

내가 저 회원을 도와줘야지 하는 선의의 마음으로 매일 매일 봉사(?)하는 씨푸 씨처럼 좋은일 하다가 남에게 상처주고 떠나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내가 가볍게 한가로이 던져보는 조크... 조그만 돌팔매 하나에도 상처입고 죽을 수있는 개구리의 연약한 모습을 떠올려 본다.

움츠린 몸을 펴고 춥고 긴 캐나다의 겨울 체육관에 들어서는 오늘도 나 자신을 뒤돌아 보면서 서로 배려해주는 분과 함께 운동한 후 따뜻한 커피한잔을 나누고 싶다.

역지사지로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도 해보는 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그런 훈훈한 계절이 되고 서로 돌아보아 주는 끈끈한 정과 사랑의 관계들로 잘 가꾸어 나가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싶다.

P.S. 고“제임스 김”에게 다시한번 애도를 표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Kenny Yang, wildinwind@hanmail.net)

 

월간"코리안저널캐나다" 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