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엘비스 프레슬리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다. 모든 음악 잡지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인으로 올라 있으며 로큰롤의 탄생과 보급에 크게 공헌, ‘로큰롤 창시자’,’로큰롤 황제’라 불리고 있다. 1950년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수많은 젊은이를 로큰롤에 열광시키게 했으며 20세기 음악 역사상 최대의 논점을 불러일으켰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단번에 슈퍼스타까지 오르며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되었다. 엘비스의 음악은 초반, 어른들의 눈에는 차갑게 느껴졌고 '록은 젊은이들을 불건전하게 타락시킨다'고 생각하여 그의 음악을 금지하고 탄압운동을 전개해 나갔지만, 오히려 젊은 층 사이에는 더욱 붐이 확대해 나갔다. 이후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로큰롤'은 세계적인 메이저 화두로 자리 잡게 된다. 그 후 영국의 비틀즈가 미국에 등장하기 전까지 엘비스는 미국음악의 가장 중심에 군림하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음악을 듣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음악을 듣게 했으며, 패션, 머리 모양까지 젊은이들에게 유행시켰다.
‘황제’를 탄생시킨 모자간의 생일선물 엘비스 프레슬리는 1935년 1월 8일 미시시피주의 한 작은 집에서 태어났다. 엘비스는 원래는 쌍둥이였지만 불행히 한 명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부친이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어머니가 재봉틀 일로 가계를 꾸려 나갔지만 지독한 가난 때문에 흑인 슬럼가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감이 없어 말을 더듬었고 ‘마마보이’란 이유로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엘비스는 11세 생일 때 주변의 흑인 아이들처럼 권총을 선물 받고 싶어 했으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권총 대신 기타를 선물했다. 아들 손목을 잡고 주일마다 교회에 가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랑을 담아 음악의 꿈을 선물한 것이다. 엘비스는 고교 졸업 뒤 낮에는 트럭을 몰며 돈을 벌고 밤에는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1953년 여름 18세의 엘비스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거금(?) 4달러를 투자해서 멤피스의 선 레코드의 스튜디오에서 당시 인기 있던 발라드곡 'My Happiness'와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을 녹음해 자신의 첫 번째 테이프를 만들었다. 이 생일선물이 후일 ‘로큰롤 황제’가 탄생하는 실마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음반사의 여직원이 엘비스의 이 노래를 듣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둔 다음, “좋은 발라드 가수. 꼭 붙잡을 것”이라고 메모했다. 이듬해 흑인 노래를 잘 부를 백인 가수를 찾을 때 이 메모를 본 레코드사 사장 샘 필립스는 그의 녹음을 듣고 엘비스의 재능을 직감, 1954년 6월 엘비스를 불러 노래를 직접 듣고 그를 가수로 키우기로 한다. 엘비스의 노래 “That's All Right(Mama)”가 멤피스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자마자 청취자들의 엽서와 전화가 폭주했다. 20세기 최고의 가수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엘비스는 1955년 11월 21일 RCA 레코드와 계약하게 된다. 엘비스는 TV쇼에 출현하여 흑인들의 리듬 앤 블루스(R & B)를 부르며 백인답지 않은 노래실력을 보여주었으나 당시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종교단체 등의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그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엘비스의 공연을 본 젊은이들은 팬이 되어갔다. 1956년 1월 27일 데뷔앨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를 발매, ‘Heartbreak Hotel’과 ‘I was the one’를 공개했다. 이 싱글 앨범은 4월에 로큰롤 앨범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당시 많은 음악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6월에는 NBC Milton Berle Show에 출연해 '하운드 독(Hound Dog)'을 하체를 흔들며 불렀다. 엘비스는 처음에 'The Hillbilly Cat(시골 고양이)'이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해서 'Elvis the Pelvis(골반의 엘비스)'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설리번 쇼에 3번째 출연 당시 그의 노골적인 하체 춤으로 인해 초반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자 TV 방송에서는 상반신만 방송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엘비스는 플로리다의 연주에서 경찰관이 하체를 움직이면 체포하겠다는 협박으로 새끼손가락만 움직여 부르기도 했다. 엘비스는 한국에서는 발라드곡이 주로 알려져 있지만, 흑인음악을 백인의 영역에 끌어온 ‘혁명적 가수’였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 로커빌리(록과 컨트리 음악이 섞인 음악) 명예의 전당, 컨트리 뮤직 명예의 전당 그리고 2001년 복음성가음악(Gospel Music Hall of Fame) 명예의 전당 등 4개 분야에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류역사상 유일무이한 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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