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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낙엽

kenny Yang 2011. 10. 23. 15:10

 

 

 

                                                                         토론토 근교 알공퀸 공원의 단풍

 

이번 주 계속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 이제 아침 저녁으로 영상10도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우리 동네에도 지천에 널린 단풍나무들이 울긋불긋 변해 조석으로 산책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모처럼 시간을 내 알공퀸 파크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려고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미80%이상 낙엽이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조금 남쪽에 있는 발삼 레이크는 아직 단풍을 볼 수 있다니 꿩 대신 닭이라고 가까운 거기라도 가 봐야겠다.  알공퀸 단풍은 빨간색이 많으나 발삼은 노란색이 많아 아무래도 감흥은 좀 떨어지겠지만...     

   이민 후 첫 가을, 토론토 북쪽으로 차를 몰고 충청북도 크기의 광활한 알공퀸 공원에 갔었다. 사방에 펼쳐진 아름다운 단풍숲을 보고 떠나 온 고국의 내장산과 설악산이 떠 올랐고 순간 그리움에 사무쳤다. 그 자리에 서서 그리움으로 스스로 타오르는 하나의 단풍이 되었었다. 아직 기억은 살아있고 그리움은 긴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가을이 되면 아무리 바빠도 단풍구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연유이기도 하다   

  단풍이 빨간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변하는 이유는 잎의 액포 속에 들어있는 엽록소와 다른 색소 성분의 비율 때문이다. 밤시간이 길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스스로 보호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 때 잎과 나뭇가지 사이에 층을 만들어 영양분 공급을 차단한다      

이에 따라 엽록소가 줄어들면서 그 속에 남아있던 색소의 종류에 따라 단풍잎의 색상이 녹색에서 다른 색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들에게 가을 한철 아름다운 색상의 단풍잎을 보여주고 그러다 땅에 떨어져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무도 줄기에서 잎을 떨어뜨려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매서운 바람의 영향을 줄여 추운 겨울에 스스로 대비한다. 아마도 춥고 긴 겨울 동안 목재의 밀도가 치밀하게 형성되어 단단해지기 때문인지 캐나다 단풍나무는 쓸모가 많다. 목재의 경도가 높아서 세계볼링협회에서 국제경기용 볼링장의 레인목으로 캐나다산 단풍목을 쓰도록 지정하고 있다. 그 수액으로는 메이플 시럽을 만들어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공원을 걷다 숲 속에 떨어진 잎사귀들을 가까이서 찬찬히 보니 같은 단풍잎인 줄 알았는 데 하나도 똑 같은 게 없다. 하나 하나가 개성을 지닌듯 하다. 우리네 개개인의 삶의 애환이 다르듯이 구멍 뚫린 낙엽, 벌레 먹은 것, 노란색, 빨간색, 아직 녹색 그대로 떨어져 뒹굴고 있는 잎사귀 등 등...  인간의 지문처럼 모두 다르기도 하고 볼품이 없다그러나 문득 고개를 들어 단풍나무 숲을 다시 보니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촛불이 자신을 소진해 가면서 주위를 밝게 하는 것처럼 나뭇잎의 생애도 그야말로 살신성인(殺身成)이다.  봄부터 잎으로 햇빛을 받아 광합성 작용을 통하여 양분을 만들어 나무 뿌리에까지 공급해 준다. 기온이 낮아지는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으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다가 스스로 가지에서 떨어져 나무를 위해 거름이 되어 준다  

 삶은 여러 계절로 이루어진다.  혹시라도 땅에 떨어진 낙엽이라고 낙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봄을 위해 기꺼이 썩어 거름이 되어주는 가을 낙엽의 숭고한 의미를 깨우치도록 권하고 싶다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총천연색 단풍의 화려함보다 땅 위에 나 뒹구는 초라한 낙엽 한 잎이 거름이 되어 차세대를 키우는 귀한 역할을 할 때 더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나를 위한 겉보기 치장보다는 타인을 위한 희생정신과 내면의 숭고한 가치가 더 중요함을 이 가을의 단풍과 낙엽을 통해 새삼 배우고 있다.          

 wildinwin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