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용 글, Ref.

고창의 재발견

kenny Yang 2010. 1. 14. 00:15

 

 

[포토] 고창의 재발견!
가창오리에 감탄하고…그리운 어머니에 감복하고~
 
김상문 기자
년에 두 번은 가야 요즘말로 ‘지대로’ 봤다고 할 수 있는 고창이 아니었다. 동백과 청보리가 고창의 봄이라면 꽃무릇과 단풍은 고창의 가을 아이콘이었다.
허나 고창의 겨울은 또 다른 멋을 지니고 있었다. 소복이 쌓인 눈 속에 운치를 더하는 고창읍성과 선운사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고인돌은 계절의 또 다른 멋과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특히 자연의 경이로운 선물, 가창오리의 군무는 겨울 고창이 주는 특별함이다.
여기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안현돋음별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우리네 어머님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그리움에 여행자를 숙연케 한다.
 
자연의 경이로운 선물을 받다.
고창군 성내면의 동림저수지. 요즘 겨울철 진객 가창오리의 군무가 매일 펼쳐지고 있다. 이것 한가지만으로 기자는 고창의 재발견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부상했기 때문.

환경부가 철원평야, 천수만, 금강호 등 전국 118개 지역의 주요 철새도래지에서 실시한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 결과 자료를 보면, 동림저수지에는 25만여 마리의 철새가 도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던 금강호를 비롯한 상위 5대 철새도래지를 크게 앞지르는 수치로 전국 주요 철새도래지에서 관찰된 전체 철새(185종 111만여 마리)의 22.5%에 해당된다. 특히 가창오리의 경우 30~45만여 마리가 월동하고 있어 저녁 무렵 그들이 선보이는 경이로운 군무는 고창의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떠오를 만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고창군 성내면의 동림저수지를 찾았다. 해마다 10월이면 서산간척지에 모여 커다란 군집을 형성하는 가창오리가 안 보여 그 행보를 찾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인 가창오리의 행보의 경우 서산에 모인 후 날씨가 추워지는 12월경 해남·군산으로 분산 월동하는 것이 정해진 경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경로를 크게 벗어나 서산에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군산 역시 잠시 모습을 보인 후 행방불명이 된 가창오리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준 가창오리의 군무에 여행자들은 그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진/ 김상문 기자 
 
고창저수지 내 위동지 주변에 위치한 제방에 오르자 태양은 이미 물가를 황금빛으로 주변을 물들이고 어둑어둑 서산으로 넘어갈 기미다. 수면 위에는 작은 점들이 모여 검은 띠를 형성하고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 주인공을 자세히 살피자. 그들은 다름 아니 가창오리들이었다. 수면 위를 계속 날며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으로 특히 군무가 시작되기 전 더 활발한 행동을 보인다. 조금 있으면 공중에서 한바탕 군무를 시작하리라.

이런 기대에 부흥하듯 가창오리는 자리를 이동한다. 맛보기 군무이건만 기자 주변의 여행객들과 사진작가들은 “떴다” 또는 “아아” 하며 탄성을 지른다. 기자는 속으로 “아직 군무 시작도 아닌데 저 정도이면 본격적인 군무는 얼마나 상상을 초월할까” 하는 생각에 은근히 기대가 된다.

잠시 후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면서 하늘에 붉은 기운을 휘뿌리자 가창오리의 “웅웅” 하는 출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별안간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마치 아메바가 세포분열을 하듯 울퉁불퉁 대형을 취하더니 순식간 돌고래, 용, 기린 등으로 군무의 대형을 변화무쌍하게 바꾼다. 그러다 “휙휙” 하는 날개소리를 내며 사람들 머리위로 날아온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기가 질린 듯 움찔움찔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무섭다고 자동차로 숨고 또 어느 사진가는 그 장면에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잠시 후 수십만 마리 가창오리가 다시 모여 긴 대형을 이루면서 공중에서 너울너울 춤추며 휴식지로 날아간다.

관찰지는 이내 웃음이 깃든다. 머리 위로 날아갈 때는 “소름이 짝 끼치고 두렵기까지 했다” 는 여행자에서 “사진은 못 찍었어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사진작가까지 다양한 반응이다. 공통적으로 “가창오리 군무에 놀라고 환상적인 장면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겨울 고창은 “자연이 주는 선물(가창오리 군무) 하나만 보고 여행을 해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리운 우리의 어머니를 만나다
전북 고창은 미당 서정주(1915 ~2000)의 고향이자 그가 영면해 있는 곳이다. 하여 사람들은 고창에 오면 미당 서정주 시인의 생가와 묘소가 있는 전북 고창군 질마재 일대의 국화꽃 동산과 미당시문학과 그리고 안현돋음별마을을 주로 찾는다. 특히 미당시문학관이 지척에 있는 고창군 부안면 송현리 안현돋음별마을은 이제 고창에 가면 꼭 가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 안현돋음별마을에는 우리네 어머니와 누님을 만날 수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진/ 김상문 기자
 
안현돋음볕마을이란 동쪽에는 봉황이 날고 서쪽에는 용마가 청학이 노니는 마을로 선인들이 “무병장수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터를 잡은 데서 유래되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2007년 농림부가 우리동네 문화공간 만들기 사업 일환으로 마을 집집마다 지붕과 담벼락에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벽화)가 그려져 있다.

시 주인공인 ‘거울 앞 누님’의 활짝 웃는 얼굴과 수천 송이 들국화가 그려져 있다. 또한 어느 집에는 어머님의 환한 모습도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았던 또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는 그리운 우리의 어머님 모습이어서 가슴 찡한 마음은 눈 껌벅거리며 파란 하늘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 미당이 생전에 거닐며 시상을 떠올렸던 안현돋음볕마을.                                                                ©사진/ 김상문 기자
 
▲ 마을 담벼락과 지붕 등에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장면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 김상문 기자
마을을 둘러보는 시간은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취재를 마치고 다시 미당시문학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다 골목에서 만난 마을의 어느 노인분은 기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방송국에서 다녀간 후 (안현돋음별마을)더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생활이 오픈되어 사생활이 침해되는 불편함도 있지만 마을 찾는 사람들 야박하게 쫓을 수 없어서 대문을 열어놓는다”고 하신다.

돌아오는 길 기자가 지나치는 담벼락 한곳에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중략)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라는 ‘국화 옆에서’ 시어가 그렇게 생생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여행은 미당시문학관을 출발 미당이 생전에 거닐며 시상을 떠올렸던 ‘안현돋음볕마을’ ‘미당 묘소’ 질마재까지 천천히 걸어 갈 것을 권한다. 차지 않은 겨울바람이 참 싱그럽게 느껴진다.

▲ 서정주 시인을 기리는 ‘미당시문학관’ 앞에 설치된 커다란 자전거가 인상적 이다.                        ©사진/ 김상문 기자
 
과거 여행에서 깨우침을 얻다.
가창오리가 현재의 여행이라면 고인돌은 과거로의 여행이다. 이를 두고 고인돌은 예전에 유행했던 노래 “과거를 묻지 마세요∼♬ 라는 말 저는 절대 싫어합니다” 라고 말할 것 같다. 이는 고인돌의 과거를 모르고 건성으로 둘러보는 여행자의 방법과 인식 때문이다. 즉 속속들이 살피면 살핀 만큼 여행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 것이 고인돌이다.

고창의 고인돌은 옛날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정신상, 사회상, 문화상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이를 보전하고자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세계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 고인돌은 거석문화의 산물로서 이제 한국을 천연기념물에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다.    ©사진/ 김상문 기자
 
고인돌은 고창읍에서 북서편으로 약 9.5km 떨어진 매산 마을에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만 447기이다.

이처럼 한 지역에 고인돌이 밀집된 현상을 학계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일로 보고 있다. 특히 고인돌의 일반적 형식인 남방식·북방식과 더불어 고창에만 존재하는 ‘고창식 고인돌’의 존재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순우리말로 “굄돌을 가지고 있는 돌”이라는 고인돌은 한낱 ‘돌덩어리’로 평가절하할 수 있지만 학계는 청동기시대의 장묘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하고 있다.

가이드 역시 “말 못하는 돌덩어리라고 대충 둘러보듯 살피고 돌아가시는 분도 계시는데 과거 없이 현재 없고 미래 또한 없다”며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볼 것을 당부한다. 하얀 눈에 소복이 쌓인 고인돌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다. 

무병장수의 꿈과 희망을 만나다.
흔히 고창에 오면 제일 먼저 선운사 그다음 학원농장이 여행의 정규 코스이지만 신년의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을 만 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고창읍성’이다. 무병장수에 대한 희망과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운사와 도솔천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힌 설경 또한 볼 만하지만 ‘고창읍성’의 설경도 여기에 뒤지지 않는다.


▲ 선운사 경내에 매어진 소원성위를 비는 띠. 광목 줄에 빼곡히 매어져 있다.     ©사진/ 김상문 기자
 
아마 성곽에 올라 세상을 둘러보거나 성 안을 천천히 걷는 여행의 묘미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묘한 맛을 준다. 밖에서는 눈으로 고생이지만 일단 성 안으로 들어오면 눈과 소나무가 그려내는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다.

하얗게 뒤덮은 눈의 느낌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특히 밤에 고창읍성이 보여주는 자태는 성과 눈 그리고 조명이 어우러져 여행자 모두 탄성을 자아낸다.

예부터 고창읍성은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다. 약 1.7km에 이르는 성곽의 길은 약 30~40분 소요 되는데 굴곡이 심하지 않아 마실 나온 듯 유유자적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바퀴를 돌면 다리의 병이 낫고 두 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를 돌면 극락승천의 길이 열린다고 한다. 특히 윤달에 하는 것이 효험이 있어 매달 엿새 날이 좋아 초엿새, 열엿새, 스무 엿새 날이면 답성 행렬이 많아진다. 이때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돌면 그 효험이 배가 된다는 전설도 있다.

이를 두고 고창읍성의 한 관리자는 “전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여행자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건강과 행복’을 주는 읍성에서 겨울 경치에 푹 빠져 볼 것을 권한다.

"여기도 좋아요"
진의종 전 국무총리와 부인 이학 여사가 1960년대 초반 고창군의 광활한 미개발 야산 10여만 평을 개간해 학원농장. 처음 땅을 일구기 시작한 1960년대에는 뽕나무를 심어 잠업을 했고 70년대에는 목초를 재배해 한우 비육사업을, 80년대에는 보리·수박·땅콩 등을 재배했다. 그 후 1992년 초에 장남인 진영호씨가 귀농해 정착하면서 보리와 콩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장미·카네이션 등 화훼농업을 병행하면서 관광농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2000년에 콩 심었던 밭을 메밀로 작물 전환해 봄의 보리, 가을 메밀이 있는 아름다운 농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학원농장 주변은 2004년 전국 최초로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되었다.

청보리가 자라는 겨울에도 그 파릇파릇한 느낌이 좋아 많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과 ‘만남의 광장’ 등이 촬영되었다. 더불어 백제 때 검단선사가 창건한 선운사 설경도 볼 만하다. 특히 선운사로 이어지는 도솔천은 마치 “하얀 나라에 온 것 같다”는 평이다.

여행정보
고인돌관광안내소 : http://culture.gochang.go.kr/goindol/
고창읍성관광안내소 : http://www.gochang.go.kr/festival/
미당시문학관 : http://www.seojungju.com/
학원농장 : http://www.borinara.co.kr/
선운사 : http://www.seonunsa.org/
 

출처:브레이크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