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좋아하세요?
커피 좋아하세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거라는 기상예보가 무색하게도 성탄절 아침에는 눈이 비가 되어 내렸다. 비교적 따뜻한 토론토의 겨울이 되나 했다. 지구온난화로 지구촌 곳 곳에 변화가 온다더니 이곳이라고 예외일까? 그러나 겨울은 겨울, 박싱데이 아침 부 터 눈발도 날리고 거실 창밖에 매서운 동장군의 위세가 느껴져 마음먹었던 쇼핑도 자제하고 싶은 날씨이다.
어렸을적 복더위의 이열치열대신 엄동설한엔 이한 치한(?) 이라고 이렇게 추운날이면 장독대에서 이가 시릴정도로 차거운 얼음 동치미 를 꺼내 무우를 썰어서 얼음국물과 함께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별미로 즐기곤 했던 생각이 난다. 이민왔다고 입맛이 변했을까마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손수 끓여 그윽한 향기를 음미하면서마시는 뜨거운 블랙 커피 한잔의 맛이 한겨울 냉동 동치미맛을 대신하고있다. 냉정과 열정사이라 할까…
개인적으로 커피를 싫어하던 내가 언제부터인지 업무중에는 물론 물론 심지어 운전 석 옆에 따끈한 커피한잔 놓지않고서는 드라이브도 하기싫을 정도로 카페인 중독 자가 된것 같다.
학창시절부터 커피 한잔을 마시면 그날은 자정까지 잠자리에 못들고, 두잔 마신날은 새벽1시까지, 세잔 마시면 2시까지 이렇게 정확하게 카페인량에 비례하여 불면에 시달려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밤세워 시험공부 하는날은 커피의 양을 늘려서 졸음을 쫒아내고 팝과 경음악을 들으 며 수험공부에 큰 효과를 보았다. 각성제인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로 수면시간을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어 얼마나 편리했는지 모른다.
아파트 건너편 앞동의 한 창문에 마지막 불빛이 꺼질때까지, 내 기억으로는 아파트 맞은편 어느 여학생도 우리집 창문에 보이는 불빛이 꺼지기를 기다린듯, 경쟁적으로 서로 늦게까지 공부 했었는데 커피를 한잔 더 마시면 졸리웁던 꼭두새벽에도 총명한 상태를 자동으로 유지할 수 있었으니 항상 싱거운 나의 승리였다고 회상된다.
평소에는 커피가 수면을 방해해서 좋아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학교친구들은 아무 렇지 않게 즐겨 마시고 해서 내가 카페인에 특별히 센시티브한 체질인가? 하고 걱정 한적도 있었다. 일부러 주위의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일부는 나와 같이 수면에 영향을 준다고 대답해서 다행히 내가 별난 특이체질은 아니구나, 하고 스스로 위안 을 삼기도 했었다.
그러다 학업을 마치고 직장근무할때도 20여년간을 커피를 멀리하고 살았다. 당시 나는 커피의 맛을 알기는 커녕 쓴맛의 커피는 단지 각성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었으므로…
캐나다로 온 이후 몇년전 캐내디언 ‘미스터 커피’(?)를 만난 계기로 다시 마시기 시작하여 이제는 커피 예찬론자까지 되어버린 필자는 업무상 하루에도 4-5잔이 기본이니 커피와 건강에 관한 기사가 뜰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꼭 스크 랩까지 해 두는 버릇이 생겼다. 대부분 커피가 인체에 이롭거나 해롭다는 내용인데 적당한 양의 커피는 이롭다는 학설이 좀 더 우세한듯 하다.
캐나다에 정착한후 캐내디언 회사에서 근무때는 다국적출신의 직원들과 점심후 구내 식당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에스프레소, 카페라떼,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푸 치노, 카페모카, 레귤라커피등등 여러가지 커피를 취향대로 골라 마시는 이들을 참 신기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물론 난 식사후 꼭 물만 마셨고 그런 나를 오히려 이상하다고 느끼는 듯한 캐내디언 친구들을 의식하며…
이민와서도 “커피”는 내겐 금기 1호로 사교적으로 굳이 꼭 마셔야 할 경우라면 카페인없는 디카페인 커피(조금 비싸다)를 시켜 조금 마시는둥 마는둥 하며 시간을 때우거나 금방 물컵으로 손이 가곤 했었다.
필자가 오래전에 토론토 북부의 대형 쇼핑몰안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을때 얘기이다.
어느 겨울날 우연히 한 낯익은 캐내디언 할아버지 한분이 우리 화랑앞 카우치에 앉아 커피와 머핀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았다. 혼자서 운동삼아 몇바퀴 쇼핑몰안의 통로를 따라 돌다가 매일 한번씩 꼭 여기와서 쉬면서 커피를 즐기다가 일어서는 외로워 보이는 분이었다.
그 후로 나는 그 할아버지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미스터 커피” 라고 명명해 두었다. 겨우내내 거의 매일 몰안에서 몇바퀴 걷기운동하고 나서 항상 같은 자리에?앉아 커피를 마시곤 하는것이었다.
자연히 관심이 가던 중 어느날 다가가 대화를 나눠보니 친근하신 분이었다.
전직 회계사였다고 하며 나이를 여쭤보니 98세라고 한다. 한국적인 정서로, 당시 자주 뵙지 못하던 투병 중이신 고국의 아버님 생각도 나고해서,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화를 나누며 이것저것 고령의 건강관리와
식생활, 운동, 커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등등 많은 경험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30대초부터 매일 하루3-4잔의 커피를 마셔왔다는 미스터 허버트씨, 부인과는 오래 전 사별했고 딸과 손자가 가끔 홀로 사는 아파트에 찾아와 주는게 유일한 낙인듯 했다. 패밀리닥터에게 다녀와서도 이상이 없다는 건강한 98세의 허버트씨 아니 ‘미스터 커피’는 내게도 커피마시기를 강력히 권하곤 했다.
그분의 권유로 한국에서 20년 넘게 끊었던 진짜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를 용감 하게 다시 시도해 보기로?했었다.?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참으로 오랜 만에 다시 마셔보니 생각보다는 향과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분이 오면 몰안에 통행하는 많은 쇼핑객들이 보는데서 90도로 허리숙여 한국식 으로 인사드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껄껄웃으시곤 하던 어르신, 한국에 가서 살면 당신보다 어린 모든 사람들이 연로하신 분에게 가볍게 “하이 !” 대신?허리숙여 존경을 표하는것이 전통이라고 소개하니 신기해 하며 관심을 표명했다.
건강하시니 가능하면 한국 한번 가보시면 대접받으실거라고 권유하기도 했었다. 커피 한잔을 옆 커피샵에서 뽑아 드리면 다음번엔 어김없이 꼭 내게 따끈한 커피를 가지고 와 건네주는 Give and Take에 철저하던 미스터 커피, 그 후엔 용감(?)하게 먼저 말을 걸며 친구처럼 자상하게 캐나다 문화와 삶에 대하여 그리고 비즈니스의 경험담을 얘기해주던 그 분, 몇년이나 지난 이겨울에도 지금쯤 그 쇼핑몰에 다시 가면 만날 수 있을까? 벌써 수년이 흘렀으니 이제는 100살하고도 몇살 더 되셨을 연세인데…
내가 만난 최장수 캐내디언 허버트씨와의 만남은 커피가 결코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확신을 실증적으로 갖게 해주고 나를 커피예찬론자 아니 커피중독자로 만든 계기가 된것은 분명하다.
창밖에서는 춥고 긴 캐나다 동장군의 위세가 당당한데 모처럼 시간을 내 노트북에 몇줄 써내려가며 어느덧 따끈한 블랙커피를 나도 모르게 서너잔씩이나 줄커피로 연거푸 마시고 있다. 그윽한 깊은맛과?구수한 향기를 음미하는 행복에 젖어보며……
공적인 업무나 사적인 만남, 편한대화를 나누는곳에도 이제 내게 커피한잔의 여유는 빼놓을 수 없다. 생활에 비타민이자 동반자가 되어주는 커피에 어느덧 중독되어버린 필자는 지금쯤 100세를 훌쩍 넘긴 내가 캐나다에 와서 만난 최장수 백인 할아버지 ‘Mr. Coffee’아니 친절한 ‘허버트’씨를 떠올리며 다시한번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겨 보는 따뜻한 겨울을 나고있다.
“Thank You, Mr. Herbert, Happy New Year !”
양경춘기자 wildinwind@hanmail.net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어제와 똑같은 일이 오늘도 이어진다면
오늘보다 너그러운 내일을 위해
한잔의 커피에 사랑을 섞어 마셔 보십시오.
한낮을 견디기가 지루하고 힘이 들 때에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가 있다면
내일의 하늘은 코발트 빛 희망일 것입니다.
기억하기 싫은 일은 말끔히 비워버리고
아름다운 추억만을 잔 속에 채워
내일을 살아가는 지혜로 만들어 보십시오.
식어버린 커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단비같은 위로되어 가슴을 적시고
달콤한 세상의 향기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을 위하여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잔을 비워 보십시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은 자유로와지고
지친 마음들은 빈 잔에 녹아 들어
향긋한 커피의 속삭임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생각 없이 마시는 커피 한잔 속에도
가슴을 적시는 그윽한 향기가 있고
초라하지만 넉넉한 사랑이 들어 있답니다.
마음만 먹으면 마실 수 있는 커피 한잔에
오늘보다 값진 내일을 타 넣으며
잠시 쉬어가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은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