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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내셔널사 부사장 벤진(Ben Chin)

kenny Yang 2008. 12. 1. 10:54

 

코리안저널캐나다 2008.12월호 게재

 

 

나다 최대  N/A/T/I/O/N/A/L Public Relation 사에  둥지를

(Ben Chin) 부사장/ 미디어 전략담당

대담: 김원동 발행인, 양경춘 이사

 

 금년 8월에 창간한 코리안저널 캐나다가  미국판에서 독립하는 첫달이자 2008 한해를 마감하는12 표지에 실을 인물 선정을 두고 편집진은 장시간 회의를 거듭 하였다.  결국 최근 온타리오 주수상 달튼 맥퀸티의 언론 보좌관에서 캐나다 최대의 정부관련 홍보회사 “National” 부사장으로 옮겨 둥지를 트고 다시 높은 창공을 향하여 비상을 준비중인 (한국명: 병규)으로 확정하고 즉시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오랫만에 캐나다 한인들이 주목하던 모델 진을 만나기 위해 본지 양이사와 함께 다운타운의 내셔널 캐나다사를 찾아가는 금요일 오후, 돈밸리파크웨이를 달리는 차안에서 문득 나도 모르게 숙연한 상념에 젖어들었다.

 유명한 외교관으로 박대통령 시절 영욕의 순간들을 겪은 그의 부친 진필식 대사와  만두를 맛있게 만들던 진씨의 모친에 대한 특별한 필자의 회상때문일까? 아니면  오래전 아들또래인 진이 필자가 주최한 토론토시장배 쟁탈 소수민족 축구대회에서 필자의 부탁에 따라 유창한 영어로 사회를 보던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속에 흘러가고 있어서인가?

올해 44세인 진부사장도 특별히2008년을 잊지 못할것이다.

고령이신 부모님 두분이 한달간격으로 모두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났고 정들었던 달튼 맥퀸티 주수상의 언론보좌관직을 떠나 캐나다 최대 전국홍보회사 내셔널사의 부사장으로 일터를 옮긴 ……

우선 아는독자도 있겠지만 캐나다 대사를 지내는 외교관으로 세계 각국을 순회근무했던 그의 부친 진필식대사는 23녀를 두었으며 진씨는 차남으로 누이와 , 그리고  여동생이 있다. 1964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나  부친의 근무지 따라 어린시절을 독일, 미국, 칠레, 한국, 홍콩,캐나다 7개국을 두루 다닌 덕에 언론인으로서 기초 자질을 갖추게 된것은 행운이라고 할것이다.

 

어느덧 그도 언론과 정치경력이 쌓여가고 이제 중년에 접어드는 연륜을 느끼며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을까?    

 

토론토다운타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도착하자 토종 한국인 전형의 크지않은 키에 친절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반겨 주는 벤진 부사장이 정겹게 다가선다.

그가 내오는 커피 한잔을 테이블에 놓고 필자와 벤진, 그리고 본지 양이사와 함께 궁금한 사항을 대담형식으로 풀어 보았다.  바쁜 스케쥴일 터인데도 2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에  솔직한 답변을 진씨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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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동 발행인(이하 ) :우선 캐나다내에서 준주인NWT 이승신의원을 제외 하면 캐나다 한인중에서 지난 선거까지 정식 주의원(MPP) 연방의원(MP) 연속 도전장을 냈지만 안타깝게도 8 8패입니다. 2006 MPP보궐선거에 자유당으로 입후보했다 아깝게 떨어진 있는 부사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사장(이하 ):  눈물겨운 동포들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패배하여 지금까지도 빚을 마음입니다. 당시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셨고 구엘프에 사시던 생면부지의 할머니께서 정성어린 백불을 기부하신 일로 감격했던 생각이 새삼스럽습니다. 정치에 대하여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다시 도전하려면 실패없게 미리 완벽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가교를 만들어야지요. 자원봉사등을 통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정치계에서 일할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인들의 힘만으론 어렵다고 봅니다. “Catch 22” 상황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번 미대선에서 오바마의 교훈처럼 민족과 협력해야 합니다. TV언론에서 일했기 때문에 타민족에게도 알려져 있어서 충분히 이길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우선 커뮤니티에서 수용할 있는 후보를 내야 합니다. 인도계,중국계,이탈리언계등이 자기네 커뮤니별로 MPP들을 배출하고 있는데 한인은 독자적으로는 어렵고 필히 다민족 사회와 협력해야 합니다. 본인의 노력과 자질도 중요하지만 150여개 소수민족커뮤니티들과 함께 교류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인계 캐내디언들의 정치참여의식이 높아져 투표 참여율을 올리고 1,1.5세와 2세를 아우르는 네트웤이 필요합니다.

 

양경춘이사(이하 ): 맞는 얘기입니다. 새로 부임한 이곳 내셔널사의 부사장 으로서 주로 어떤업무를 하게 됩니까?

 

: 다양한 부문에서 전략기획,연구분석,국내외 대정부 홍보 컨설팅을 하는 캐나다 최대의 회사로서 몬트리올에 본사가 있고 토론토, 밴쿠버, 빅토리아, 캘거리, 오타와, 퀘백, 헬리팍스와 뉴욕, 런던에 사무실이 있습니다. 저는 언론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일을 하고 있지요.   

 

: 맥퀸티 온주 수상의 언론보좌관으로서 특별히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편의점업계의 입장과  수상의 발언이 부딪혀 중간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지요?

 

: 당시 수상께서 편의점에서 와인과 맥주판매 허용은 바꿀시기가 아니다. 부모들이 LCBO 콘트롤을 원하고 있다 불어 발언이 영어 통역과정에서 와전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수상이 유권자가 작은 한인커뮤니티라고 경시한것은 아니며 어쨋든 그때 발언이 문제가 되자 한국커뮤니티 신구세대 리더들을 만나야겠다  해서 한인회장,OKBA회장, 사이먼 젊은세대를 포함하여 함께 만났었죠.  그때 수상 본인도 이민세대로서 할머니께서 컨비헬퍼로 일했었고 여러분 고생하는것 안다. 본인이 그런식으로 얘기해서 미안하다고 직접 사과했습니다.

어른들은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젊은 사이먼 박이 다시 한국 방문중인 어머니께서

강도당해 부상한 몸으로 보도를 읽고 분노하신다고톤을 높이자, 재차 수상으로서 바보같은 말을 한거다. 어머님께 사과전화 하겠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해서 후에 직접 통화까지 하셨죠. 수상으로서 자기발언에 대해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미안해 했었습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실협간부와 함께 수상,장관등 고위층 미팅을 주선하고 온주관광광고를 담배진열장케이스에 유치하는데 도움을 적도 있지요.

 

: 컨비년스 업계의 희망인 맥주,와인 판매허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생각에도 컨비년스 스토어에서 와인.맥주판매 하는것이 좋고 도와줄 있지만 먼저 가게의 브랜드를 밝고 깨끗하게 바꾸었으면 합니다. 온주의 젊은 어머니들이 반대하고 있고 특히 기회만 되면 우리 한인들은 정부에 강도피해를 얘기하는데 맥주, 와인판 매를 허용해 달라고 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강도얘기하는데  맥주,와인판매를 허용해달라는 요구와 상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부에서 보기는 불안하죠. OKBA 에서부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신용을 쌓아 가면서 추진하는것이 좋을것 입니다.

 

: 화제를 어렸을적으로 돌려 보지요. 한국이 아닌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생하셨는데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태어날 있는데 아버님이 근무하시던 제네바에서 태어나 각국을 순회하며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것은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가는곳마다 다른문화와 생활방식에 적응해야 해서 마음을 크게 잡고 역사와 생활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겨 지적탐구심이 있었지요.

 

:City TV 사장과 러시아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대화가 통해 기자로 취직했다 해서 화제가 되었던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아내가 저를 보고 당신은 언론계기자가 좋겠다  권유하고 견본테잎을 준비하는데 카메라등 도움을 주었습니다. 학교 리포트를 준비한다고 취재요청해서 테잎을 만들었죠. City TV에도 보냈었죠….

그당시 저는 이탤리언 식당에서 매니져로 12까지 근무하고 있었는데 끝날시간이 되어 부부로 보이는 손님이 들어오는거예요. 이거 클로징 시간인데? 하면서 보니 City TV  모세스사장이 직접 저를 12 인터뷰하러 온겁니다. 알고보니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 박사를 러시아 문학으로 전공하신 분인데 러시아 역사와 문학에 대해서 서로 좋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낸 테잎이 베스트 테잎이라고 이사람을 채용하고싶다고 부인보고 어떠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부인도 즉석에서 OK 해서 운좋게 TV 사에 취했습니다.

 

: 부친께서 러시아대사로는 가신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러시아 역사와 문학에 대해서 정통하게 되었나요?

 

: 정치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독일대사로 계실때 박대통령의 독재 정치시절 유럽의 주요국 주재 한국 대사들이 모여 청와대에 연장자인 아버님 대표로 서명하여 편지를 보낸적이 있지요. 아마도 대통령 주변에서 아버님을 시기하던 반대파들이 사주해서 아버님을 탄압하기 시작했죠. 그당시 1974 문세광 육여사를 저격해서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있을때인데 차기 외무장관 0순위이던  아버님을 본국으로 소환해서 공산당으로 몰아 중정에서 체포하여 산속으로 끌고 갔다고 합니다. 각본대로 공산당임을 시인하고 각서쓰라고 강요해도 아버님은 끝까지 안썼다고 합니다. 옷벗겨서 가택연금시키고….. 10살때인데 어린 저는 이러한 남한의 독재정치에 나름 울분을 토하는 대신 남한과 북한의 체재에 대해서, 우리민족의 역사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북한에 영향을 끼치는 러시아에 대해서도 스스로 공부하게 된겁니다.

 

: , 그랬었군요학교생활은 어땠습니까?

 

:제가 독일에서 어머님과 함께 철수하여 한국에 연금중인 아버님과 합류하기 위하여 집에 들어섰을때가 생각납니다. 그런 아버님의 모습은 생전 처음 뵈었습니다. 면도도 안하시고 셔츠차림으로 거실에 계셨는데….. 항상 깨끗한 정장차림만 뵈었었기 때문에무척 놀랬었죠. “사랑하는 !” 하고 불러 주셨는데…. 그때처럼 아버님이 왜소해 보인적이 없었죠그때 깨달았습니다.

아버님같이 그렇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충성을 다해도 이런 시기가 오는구나 그런 느낌을 가졌었습니다. 1 서울외국인학교에 다녔는데

KCIA 측에서 강제로 일반 한국학교로 보낼려고 하자, 담임이던 미국인 슈나이더선생님이 남몰래 집에 오셔서 캐나다나 미국으로 빨리 보내는게 좋겠다고  하셨죠. 캐나다로 결심하고 얘기하자 저를 불쌍히 여겨 토론토행을 주선해 주셨습니다. 그때 형과 막내누나가 토론토대학에 재학중이어서 함께 지내게 됐습니다. 주위 백인분들이 대사아들인데 고아처럼 지내니 안됐다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숙제도 돌봐 주시고저도 후에 자연스레 토론토대학을 다녔죠.

 

: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보헤미안적인 세계관,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력이 길러졌으리라 생각도 됩니다만 한편으로 어린나이에 어려운점도 있었으리라 유추해 봅니다. 특히 우리아이 자랄때 보면 친구들이 중요한 요소인데수시로 바뀌는 상황이 힘들지 않았나요? 정치적인 박해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텐데요

 

: 여려분들이 걱정해 주시고 점에 대해서 자주 질문하시는데 경우엔 다행히도 오히려 적응력이 길러졌다고 봅니다. 아버님이 한국에서 고초를 겪으실때 토론토에서 어려운 살림을 하며 웨이터, 바텐더,택시운전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빅토리아와 덴포스에 있는 오키 파크 공립학교를 다녔고 10.26으로 박대통령이 쓰러진 아버님이 풀려나신 1978년에 워싱톤의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동양정책연구원으로 1 정도 근무하시다가  저희들이 있던 토론토로

오셨습니다.

 

: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부인과는 언제 결혼하셨고 자녀는 언제쯤 생각 하시는지?

 

:1987년에 만나 1990년에 결혼했습니다. 브리짓드는 알버타 출신으로 오타와 칼튼대에서 저널리즘 전공했는데 졸업후 TV쪽으로 방향전환하여 현재 디스커버리  PD 근무중입니다. 출산을 하게되면 집사람 건강이 어려워진다고 해서 갖지 않기로 했고요.

 

: 크리스쳔으로 알려져 있는데 맞나요? 골프는 즐기시는지요?

 

: , 맞습니다. 골프는 가끔 칩니다. 스무개정도지요

 

: 이제 내셔널사에 둥지를 트셨으니 하시는 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인들을 위한  캐나다 유일의 고급시사 전국월간지 코리안 저널에 매월 정기적으로 고정칼럼을 기고해 주셔서 동포들의 주류사회 정치와 언론에

대한 안목을 높이는데 기여해 주시기를 이자리를 빌어서 정식으로 요청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양이사님께서 제안하신대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어떤 내용을 다루면 좋을까요?

 

: 이민자들위한 새정부정책변경, 주류정치권의 동향, 소수민족정책등에 한인들이 관심이 많은것 같습니다. 발행인으로서 부사장을  당사 자문위원(advisor)으로 이자리에서 임명합니다. 추후 서면으로 공식 위촉장을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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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했던 한국현대사의 와중에서 영욕의 순간을 맞이했던 부사장의 부친, 진필식대사, 그를 존경했던 평범한 민초로서 캐나다에서 성공적인 한인캐내디언으로 성장하고 있는그의 아들과 작별하며  장장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

 11월중순의 늦가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DVP 달리며 이유없이 없는 상념에 젖어든다…..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10월유신, 그리고 키타치며  허스키보이스의  여가수가  부르던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때 그사람…. 오르는 질문들……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차창밖을 보니 돈밸리 파크웨이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