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청보리밭에서...
아버지는 가을 벼를 베고 난 후 논에 보리를 심었다.
논을 밭처럼 만들고 골도 만들고 보리 씨았을 뿌리고 흙을 덥었다.
보리 싹이 조그마하게 자라다가 겨울을 맞아 더 이상자라지 못하고 죽었다.
봄이 되면 죽었던 보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논둑에 파릇파릇 풀들과 논의 파릇파릇 보리들과
그때는 '청보리밭'이란 말이 없었다. 그냥 보리밭이다...
5월이면 아버지는 보리를 베어 털었다.
보리는 이삭에 털이 날카로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날카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리를 한아름 묵어 큰 절구통에 휘둘러 메치면
낱알이 이리저리 튀고 뿍띠기가 여기저기 날라
구경하던 나에게도 튀었다.
지금같으면 샤워라도 시원하게 했을텐데..
아버지는 옷을 벗어 툭툭~ 털기만 하셨던것 같다.
보리피리 꺽어 불며 걷던 그 논둑길..
온세상이 푸른데 보리만 누렇게 익어가는 오월..
금방이라도 어린동생이 아무렇게나 돌아 다니다 양손에 꿩알을 하나씩 들고 나올 듯 싶다.
고창의 보리밭..이다.
큼지막한 밭에 끝없이 펼쳐진 보리
사월의 햇살과 보리의 싱싱함에 가슴저편의 고향 숨결이 나를 설레게 한다.
걷고 있는 저 사람들이
보리의 따가움을 모르지만은
봄과 보리의 관계를 가슴속 깊은곳에 담고 있다.
손을 내 밀어 보리를 만져본다.
아기팔뚝 같은 줄기의 연약함..싱싱함..
보리싹들속에 감춰진 싱그러운 녹생의 향기가 금방이라도 코에 닿을 듯 하다.
아직 보리피리를 만들기엔 너무 어린 싹들
손으로 요리조리 만져보니 속에 보리이삭을 품고 있다.
몸은 떠나 오지만 눈과 마음은 그곳 고창의 보리밭 속에 남아있다.
사진,글: 민턴클럽 엄성철님